'仙人橋(선인교) 나린 물이 紫霞洞(자하동)에 흘러 드러 半千年(반천 년)
王業(왕업)이 물소래뿐이로다. 아희야. 故國興亡(고국 흥망)을 무러 무삼하
리요'.
이 글은 조선개국 공신으로 조선 경국전을 집필, 편찬했으며 이태조의 총애
를 받던 삼봉 정도전(鄭道傳, 1337~1398)선생이 지은 '회고가'다.
고려 왕조에 등과해 녹을 먹었던 정도전은 이 회고가를 통해 고려 흥망의
무상함을,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글로 표현했다.
강성대국을 표명했던 삼봉은 '이방원의 난'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살
해됐지만 요동정벌을 주장하던 그의 우렁찬 목소리는 아직도 들리는듯 하
다.
◇향토유적
평택시 진위면 은산2리 아늑한 곳에 위치한 정도전선생 사당내에는 정도전
의 위패와 영정 그리고 고종이 내린 사액 현판(유종공종·儒宗功宗)이 걸려
있다.
정도전선생 사당은 지난 86년 3월 향토유적 2호로 지정됐으며 삼봉의 철학
과 사상이 수록된 '삼봉집 목판본' 14권 459혈 236포가 판각고에 보관돼 있
다.
정도전의 공훈과 지위는 고종 2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회복됐으며 당시 고종
은 삼봉에게 '문헌공'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진위면 은산리에 사당을 지어
삼봉의 업적과 덕망을 기렸다.
'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임금의 하늘이다'며 민본 정치를 주창했던 삼봉
은 분명 백성을 사랑했던 위대한 정치가로서 평택시민들의 가슴속에 영원
히 남아있다.
서탄면 금암리에 위치한 '韓蘊將軍 忠臣旌問(향토유적 3호)'은 정도전 사당
에 이어 또하나의 대표적 향토유적이다. 조선 숙종 22년(1696년)에 세워졌
다.
이 고장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온 장군은 38세때 장흥부사에 부임, 왜구와
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. 사당안에는' 鐵腸石膳 一心殉國'이란 현판
이 걸려있다.
'창자는 쇠붙이와 같고 쓸개는 돌과 같아라 그 마음은 오직 나라에 바쳤도
다'. 애국심과 순절의 교훈을 주고 있는 한온장군은 후세에게 조국의 참 뜻
을 일깨우고 있다.
이와함께 평택지역의 향토유적은 이충동 산 37의1에 있는 '충의각(향토유
적 5호)', 도일동 산 84에 위치한 '원균사당(향토유적 6호), '수성군 사당
(향토유적 4호)등이 있다.
충의각은 조선 중종때의 인물인 정암 조광조(1482~1519)선생과 인조시대의
인물인 추담 오달제(1609~1637)선생의 넋이 담겨 있는 유허지비를 보전한
비각이다.
충의각이 위치한 이충동은 이 두분을 기리기위한 지명이며 정암선생은 중종
때 혁신정치를 꾀하다 실각했으며 추담은 삼학사의 한분으로서 병자호란때
순절했다.
원균(元均·1540∼1597)사당에 봉안된 원균장군의 영정은 당시 무인이었던
그의 용맹한 모습을 담고있다. 임진왜란 당시 그는 당파(적선을 들이 받는
것)작전을 즐겨 사용했다.
지휘장수의 용맹함이 뒷받침되지 않는 다면 불가능한 작전이라는 것이 군
사 전문가들의 평가이고 보면 당시 원균장군은 용맹무쌍한 용장의 면모를
보였다.
제대로 된 역사의 평가를 받지 못해 명장과 졸장 사이를 오가던 원균장군
은 사료의 재평가를 통해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불리
고 있다.
나라에서 공이 있는 장수들에게 내리는 녹훈봉작교서인 '원릉군원균선무공
신교서'는 92년 보물 제1133호로 지정됐으며 교서는 원균장군을 선무 1등
공신으로 추증했다.
독곡동에 위치한 '수성군 사당'은 조선 세조~명종때 수성군 최유림
(1426~1471)장군의 사당. 최장군은 24세에 무과에 급제 혁혁한 전공을 거
둔 무인이다.
성종은 1471년 타계한 최장군에게 병조판서를 추증했으며 안양공이란 시호
를 내렸다. 사당은 500여년 동안 10여회에 중수된 후 1982년 11월 중건돼
오늘에 이르고있다.
◇기념물
이대원장군묘(기념물 제56호)에는 1556년 조선 명종때 포승면 내기리에서
출생, 22세의 어린 나이에 왜구와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마친 애국혼이 서
려있다.
이대원장군은 1587년 2월17일 전라도 고흥 앞바다 손죽도 해상에서 수적 불
리함에도 불구, 왜구와 3일간 전투끝에 포로로 붙잡히자 스스로 목숨을 끊
은 기개를 보였다.
고덕면 두릉리 646에 있는 민세 안재홍선생 생가(기념물 제 135호)는 암울
했던 일제 시대,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민세의 고매한 인격이
묻어있다.
1891년 11월20일 평택군 고덕면 율포리에서 태어난 민세는 불의와 타협하
지 않는 정의로움과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노력
한 지도자로 평가받고있다.
현재의 생가는 지난 94년 안채·사랑채·담장·화장실·대문 등을 보수했으
며 안채 및 사랑채의 건평은 33.3평인 조선식 전통 가옥 형태를 띠고있다.
삼국시대 도적의 출몰이 심해 양곡을 보관하기위해 축조됐다는 설이 내려오
고 있는 팽성읍 안정리 '농성'은 기념물 제74호, '원균 장군 묘
[시·군지정 문화재 - 평택] 애국충절의 기운 '진한 여운'
입력 2002-03-15 00:0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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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2-03-15 0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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